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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백장 글쓰기

[100-10] 화 불변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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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참 일에 집중하고 있던 오후 시간이었다.

복도 너머로 제법 큰 외침이 귀를 쫑긋하게 했다.

이번 달 병원비가 많이 나왔다며

한 환자가 내려와서  언성을 높이며 원무과에 따지는 소리였다. 

 

지난달보다 더 나온 추가 비용을 며느리가 부담하지 않겠다는 말에

화가 나서 원무과로 달려와 그 화를 뿌리고 있었다.

조목조목 짚어 보니 영양제를 맞았고 외부진료도 다녀와서 정당하게 나온 경비였다.

친절하게 주임과 부장이 설명을 해드렸지만 좀처럼 화는 누그러지지 않았고

몇 번을 따지다가 병동으로 다시 올라가면서도 옥타브는 줄지 않았다.

 

환자가 올라간 후 주임의 '아오' 소리가 2층 전체를 들썩였다.

환자가 뿌린 화의 불씨가 불만과 피로로 함께 번지고 있는 것이다.

 


 

질량 불변의 법칙처럼

화도 사라지지 않고 옮겨간다.

때로는 적은 화로 변화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큰 화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에 화를 삼키는 이에게는 화병으로 그 존재가 남겨진다.

이것이 화를 내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무심코 내뱉은 화의 불은 삽시간에 여러 사람을 거쳐 더 커지기도 하고

마음에 상처를 남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며느리의 화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그 화가 결국 입사한 지 얼마안 된 사원에게까지 퍼져나가고

멀찌감치 듣고 있는 내게도 불똥으로 튀었다.

 

한 번 던져진 화의 불씨가

나에게도 살짝 튀어 들어와서

강원도 산불만큼이나 따갑게 오래 타고 있다.

 

퇴근할 무렵이 되어서 복도 너머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번져나왔다.

농담으로 분위기를 올려주는 부장의 재주 덕분에

원무과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화를 덮는 소화기는 웃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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