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는 대학시절부터 치고 싶은 악기였다. 5형제의 둘째로 태어나서 제법 눈칫밥을 먹고 자랐다. 그리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이었기에 피아노를 배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사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피아노는 어릴 때 배워야 칠 수 있는 악기라는 편견으로 잊고 살았다.
49세가 되었을 때였다. 새벽예배에 참여하면서 찬송가 반주에 관심이 쏠렸다. 그러던 차에 여동생이 지나가듯 말해주었다. "언니야 바이올린은 2년 정도, 피아노는 5년 정도 배우면 찬송가 반주는 할 수 있을 거야"
음악학원을 운영하는 교회 권사님이 떠 올랐다. 당장 학원으로 찾아갔다. "배우시다가 언제든 그만두고 싶으시면 망설이지 말고 말씀하세요." 나처럼 늦은 나이에 열정을 앞세워 배우러 온 사람들이 왔었는데 석 달을 못 넘기고 그만두었다고 한다. 이 일로 서로의 마음까지 상할까 봐 미리 말한다고 덧붙였다. 5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꼭 배우고 싶었기에 확답을 주고 시작했다. 마라톤처럼 가야 하기에 일주일에 두 번 학원에 가기로 했다.
피아노는 고등학교 시절 시험을 위해 이론으로 배운 것이 모두라서 도레도레 건반을 두드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진도가 쉽게 나갔다. 한 손으로 치다가 두 손으로 치면서 잠시 멈칫했다. 머릿속에서는 벌써 저만치 달려가는데 손은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도 그렇게 시작한 피아노는 5년이라는 숙성 시간을 들여서 찬송가 반주와 함께 무대에서 2곡을 연주할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 그때 내치지 않고 받아준 피아노선생님 덕분에 나에게 피아노는 지금까지 잘 사용하는 툴이 되고 있다.
나에게 또 하나의 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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