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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백장 글쓰기

귀인을 만나다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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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울목마다 만났던 귀인이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자신만만하게 넣었던 수능에서 미끄러진 적이 있다. 수학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과목이었다. 중학교 때는 전국 수학경시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가기도 했기에 자신이 있었고, 고등학교시절에도 1등을 놓치지 않는 과목이었기에 수학선생님이 되는 진로를 선택했다. 결과를 보니 내 점수는 커트라인 점수였는데 내신 등급에서 한 등급이 낮아서 떨어지게 되었다. 그 해에 커트라인 점수가 예년보다 높았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막막했다. 6년 내내 목표로 달려가던 길이 절벽 앞에 다다른 것 같았다. 며칠을 방에 콕 박혀서 똬리만 틀고 있었다. 답답해하시던 어머니 손에 이끌려 재수학원에 갔다. 아버지는 말렸지만 어머니는 딸의 대학 진학을 포기할 수 없었는지 무작정 버스에 태우셨다. 낯선 곳에 들어서면서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학원에서 만난 선생님은 조용히 말을 건네어왔다.

 

"재수를 하면 더 나은 점수를 얻을 수 있지만 후기로 약대에 진학을 하는 방법도 좋아요. 약사 면허는 국가 자격증이라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중요하지 않거든요 마침 후기로 뽑는 곳이 있으니 원서를 넣어 보세요"

 

한 번도 생각지 않은 진로를 추천해 주었다. 만약 떨어지면 오라고 덧붙이는 메아리를 등에 달고 집으로 왔다. 그 후기 대학에 붙었고 그렇게 약학도가 되었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분은 내게는 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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