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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백장 글쓰기

[100-95] 현관문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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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이었다.

현관문을 번호키로 바꾼 지 10년이 넘어서 인지 

특정 숫자가 잘 눌러지지 않아서 문을 여는데 애를 먹은 적이 있다.

번호키를 바꾸려다가 번호를 먼저 바꾸어 보기로 했다.

 

오랜 세월 동안 사용하던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현관 앞에 서면 쓰던 번호를 누르고 문이 안 열리자

새 번호를 누르게 된다.

머릿속에 각인된 번호가 손에 아예 기억되어 있는 것 같다.

현관문 앞에 서면 무의식 속에서 손의 위치는 이미 옛 번호로 달려가고 있다.

 

같은 것을 매일 반복하게 되면 손이 기억하게 되는 예가 피아노 치는 일이다.

처음 악보를 보고 한 마디씩 초견으로 손에 익히는 작업이 시간이 걸린다.

어느 정도 익혀서 조금씩 외워질 때 

매일 횟수나 시간을 정해서 연습을 하게 되면 손이 악보를 기억하게 된다.

연주회에서 긴장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될 때에도

손은 기억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손이 저절로 기억하고 건반을 두드릴 때까지 

매일 연습을 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루만 빠뜨려도 일주일 전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오랫동안 해 오던 일을 바꾸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습관이든 생각이든 우리의 뇌는 바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바꾸어야 할 땐 어쩔 수 없이 바꾸어야 한다.

번호를 변경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처음 누르는 숫자는 예전 번호의 첫 번째 숫자이다.

언젠가는 새 번호로 바로 누르겠지만

한 동안은 번호의 혼돈을 날마다 경험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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